<h2>책머리에</h2>
<p>6p</p>
<blockquote><p>이미 10여 년 전부터 청년 니트의 수는 청년 실업 인구를 넘어섰습니다. 통계를 집계하는 기준에 따라 다르지만 청년 니트 인구는 대략 100만 명에서 160만 명 사이로 추정되며, 이는 15세~29세 청년의 9퍼센트에서 18퍼센트 정도를 차지합니다. 다시 말해 니트 상태는 이미 청년들의 삶과 바로 붙어 있습니다. 그저 사회가 직시하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p></blockquote>
<p>청년 니트족이 많은 것은 알았지만, 청년 실업자수보다 많은 것은 몰랐다.</p>
<p>이렇게 심각한 사안인데 니트족을 위한 지원체계는 잘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안타깝다</p>
<h2><strong>프롤로그</strong></h2>
<p>14p</p>
<blockquote><p>어른들은 이들을 무기력하다고 했지만, 나는 이들이 어딘가에 안착하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는 이유가 사회의 중력이 약해졌기 때문이라는 생각으로 '무중력'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p></blockquote>
<p>니트 상태를 잘 표현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p>
<p>사회가 청년들을 잘 뒷받침했으면, 니트족으로 직업과 교육을 받지 않고 살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p>
<p></p>
<h1><strong>1부 니트는, 없다?</strong></h1>
<h2><strong>1장 니트를 둘러싼 몇 가지 해석</strong></h2>
<p>36p</p>
<blockquote><p>현재 니트로 구분되는 상태도 니트성 정도에 따라 세 가지로 세분화할 수 있다. 첫째 '구직 단념 니트' 상태가 있다. 현재는 노동시장에 떨어져 나와 있지만 고용 환경이 개선되면 실업자나 취업자로 이동할 수 있는 상황을 말한다. 둘째 '비활동 니트' 상태가 있다. 활동에 대한 의지도 낮고 실제 활동성도 낮지만 재활성화가 불가능하지 않은 경우다. 셋째 '고립-무위 니트' 상태가 있다. 비활동 단계에서 관계 단절이 더해진 상태로 일본의 히키코모리와 비슷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것이 깊이에 따른 레벨 분류는 아니다. 그보다는 교집합을 갖고 있는 평면상의 서로 다른 영역이라 보면 좋을 것이다.</p></blockquote>
<p>책에 있는 분류에서는 시원한형님께서 말하시는 활동형 니트가 포함되지 않아서 아쉬웠다.</p>
<p>나는 '고립-무위형 니트' 상태였다가 비활동 니트로 갔다가 구직 단념 니트로 현재 존재하는 것 같다.</p>
<p>현재 취업하려면 스펙을 많이 요구해서 니트 상태로 있는데, 고용환경이 스펙 위주가 아니게 된다면 실업자나 취업자로 빠지고 싶기 때문이다.</p>
<p></p>
<p>50p</p>
<blockquote><p>집 밖에서 유유자적 프로젝트를 기획하던 시점에 나는 니트-히키코모리 상태에 있는 청소년을 '무중력 청소년'이라 이름 지었다. 히키코모리를 그대로 번역한 '은둔형 외톨이'라는 말을 그대로 쓰기 싫었기 때문이다. 비자발적인 고립 상태가 마치 자신의 의지에 의한 것이라는 느낌을 주는 은둔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도 싫었고, 외로운 사람에게 외톨이라고 명명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도 했다. 또 니트나 히키코모리라는 좁고 명확한 정의보다 좀 더 포괄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여지를 두고 싶었다. 그래서 한참 고민하가, 사람들이 이들을 '무기력한 상태로 둥둥 떠다닌다'고 손가락질한다는 사실에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무기력이라는 단어에서 한 글자를 바꾸어 무중력이라고 불러 보면 어떨까.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계속해서 영감이 솟아나왔다. 무기력이라 말할 때는 개인의 성품이나 의지에 결함이 있다는 느낌을 주지만 무중력이라는 단어를 쓰면 사회에 결함이 있다는 뉘앙스를 담아낼 수 있었다.</p></blockquote>
<p>니트-히키코모리 상태가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고, 은둔형 외톨이보다 긍정적인 용어인 것 같아서 무중력 청소년이라는 말이 마음에 든다. 빠띠 커뮤니티 실험실 1탄엣서는 물고기를 물살이로 용어를 개선하는 캠페인을 했었는데, 우리도 그것처럼 부정적 이미지의 용어를 변경하는 캠페인을 진행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p>
<p></p>
<h2>2장 이행하지 못하는 사회, 이행하지 못하는 개인</h2>
<p>61p</p>
<blockquote><p>가까운 미래에 무업사회 또는 최소한 노동 기회조차 현저히 축소되는 사회가 도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볼 때, 오랫동안 '퇴행한 낙오자'로 취급받아 온 비노동상태의 개인들, 즉 니트는 이러한 문명의 전환 과정을 조금 더 앞서 경험했을 뿐일지도 모른다. (중략) 무중력 청년이 아니라 무중력 시대를 걱정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구직 단념 니트가 아니라 노동 없는 사회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놓여 있다</p></blockquote>
<p>요새 AI의 등장과 시스템 자동화로 인해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p>
<p>노동하는 사람들보다 노동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사회가 곧 도래할지도 모른다.</p>
<p>그만큼 사회에서는 니트를 문제시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 사회를 어떻게 바꿔나가야하는지 고민해야하지 않을까 싶다</p>
<p></p>
<p>79p</p>
<blockquote><p>'준비생 계급'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한국의 독특한 선발 시스템도 니트와 청년 일반을 구분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중략) 유예하고 준비 중인 상태가 워낙 일반적이기 때문에 니트 개념이 모호해지고, 그렇다 보니 스스로 니트라고 인정하는 사람이 적다.</p></blockquote>
<p>취업준비생이라는 상태도 니트인지, 실업자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p>
<p>나도 요새 컴퓨터활용능력 시험을 준비하고 있고, 대외활동을 통해 자기소개서나 이력서에 쓸만한 내용을 채우려고 하고 있다.</p>
<p>그렇다면 나는 실업자인가? 니트인가?</p>
<p>현재 나는 내 상태를 니트라고 보고 있지만, 니트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꽤 있을 것 같다.</p>
<p></p>
<h1>2부 그들의 사정</h1>
<h2>1장 이 사회는, 내겐 맞지 않는 옷 - 미카</h2>
<p>101p</p>
<blockquote><p>결국 미카가 개인적으로 남들보다 우월하거나 엄청난 노력을 해서가 아니라, 그에게 주어진 자원이 그를 꿈꾸는 프리터 이상으로 끌어올렸다고 할 수 있다. 미카 역시 유자살롱이나 기억발전소처럼 자신을 발현시켜 줄 수 있는 사회적 토양을 만나지 못했다면 자신만의 선인장 속에서 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p></blockquote>
<p>대안적인 가치를 제시하는 사회적 기업이나 단체가 많아져야 한다고 느꼈다.</p>
<p>대안학교처럼 일반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p>
<p>나는 니트컴퍼니 덕분에 그동안 사회적으로 많이 단절되어있었는데, 사람들과의 연결고리가 많이 생겼던 것 같다.</p>
<p></p>
<h2>2장 혼자라는 건 지울 수 없는 낙인 같아 - 루나</h2>
<p>117p</p>
<blockquote><p>초등학교 때 왕따는 중학교 가도 왕따가 되지 않나요? 저는 그게, 자기 자아상이 '왕따'로 형성이 돼서 그렇다고 생각하거든요. 환경이 바뀌어도, 스스로 왕따라고 생각하는 친구는 누가 괴롭히지 않아도 왕따처럼 행동을 할 거니까요. (중략) 저는 니트 상태로 있었던 게, 일종의 자기 학대 같거든요. 그러니까 무엇을 하고자 하는 욕구를 거세당한 느낌이기도 하고, 그리고 그런 경험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숨길 수 밖에 없으니까 더 죄인처럼 느껴지기도 해요.</p></blockquote>
<p>나는 대인관계를 잘 형성하지 못한 편이었는데, 위의 말을 들으니, 그것이 '나는 사람하고 잘 못 어울리는 성격이야'하고 단정지어서 그랬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니트족도 어쩌면 '나는 직장에 잘 다니지 못하는 성격이야'하고 단정짓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p>
<p>그동안 니트족으로 있으면서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껏 했냐고 했을 때 그렇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일단 돈이 부족해서 원하는 활동을 할 수 없기도 했다. 귀중한 시간을 날린 것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은 이것저것 하면서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려고 노력한다.</p>
<h2>3장 즐거운 네트워커의 우울 - 윤자</h2>
<p>132p</p>
<blockquote><p>이런 맥락에서 니트 청년들로서는 부모와의 악순환을 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일본에서 대부분의 니트-히키코모리의 지원 조직들이 당사자들을 가정에서 끄집어내 공동생활을 하게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부모가 한 해 수천만원에 달하는 합숙 비용을 지불한 만큼 사회적인 공감대와 방법론이 어느 정도 자리 잡았지만, 전문 지원 기관이 없는 한국에서는 니트 청년이 심리적, 경제적으로 부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부모와의 잘못된 관계를 끊어야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데, 세상으로 나아가지 못해서 끊을 수가 없다. 영원한 악순환의 고리 속에 놓여 있는 것이다.</p></blockquote>
<p>히키코모리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는 공동생활이 추천되고 있는 것은 알았는데, 니트족에게도 공동생활이 추천되고 있는 것은 처음 알았다.</p>
<p>니트족으로 살고 있기는 하지만, 부모의 울타리 안에서는 스트레스도 계속 받기는 하는 것 같다.</p>
<p>같은 니트족끼리 살면은 같이 프로젝트도 진행해보고 좀 더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p>
<p>청년재단에서 히키코모리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공동생활 지원해주는데, 니트족 상태에 있는 사람들도 정부나 지자체, 재단 등에서 지원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p>
<p></p>
<h2>4장 문화사회의 끝을 잡고 - 로빈</h2>
<p>145p</p>
<blockquote><p>로빈의 이야기를 구조적으로 분석해보면 '돈', '자격', '인정'이라는 단어가 반복해서 나온다. 스스로의 가치에 대해 인정을 받고 싶은데 그러려면 자격을 획듣해야 하고, 거기에는 돈이 들어가는데 확신이 서지 않으니 돈을 투자하기도 힘들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작은 일이라도 일단 시작해야 하는데 받는 돈이 적으면 '내가 그것보다는 자격을 갖춘 사람인데 인정을 못 받는다'는 느낌이 드니까 아무것도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 되는 것이다. 이는 내가 지켜본 많은 고학력 니트들이 가지는 공통점이다. 과거의 객관적 성취가 현재의 주관적 성취감을 방해하고, 결국 미래를 향해 걸어가지 못하게 만든다.</p></blockquote>
<p>나는 대학교만 나왔지만, 대학교를 나왔는데 그래도 어느정도 임금을 받는 직업에 가야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눈을 낮추면 바로 취업할 수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싫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고학력 니트 특징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취업을 위해서 대학원을 갈 생각도 있지만,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대학원을 갈까 말까 아직 말성이고 있다.</p>
<p></p>
<h2>5장 신뢰 자본이 형성되는 지점</h2>
<p>152p</p>
<blockquote><p>결국 비노동・비활성화 상태의 개인을 사회로 복귀시키는 것은 작은 커뮤니티의 중력이다. 니트 상태의 개인들이 상황을 타개해 나갈 수 있는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가장 공통적인 요소는 그를 포용하는 커뮤니티의 존재 유무다.</p></blockquote>
<p>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쭉 니트상태로 살아왔는데, 니트컴퍼니라는 작은 커뮤니티의 존재가 없었다면 니트상태에서 나아가 직업을 구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 같다.</p>
<p>그 커뮤니티 안에서 나는 비난받지 않고 온전히 포용됐기 때문에 니트족으로 살아왔을 때 받아온 상처가 많이 치유되었다.</p>
<p>나도 니트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사회에 나가도록 돕고 싶다는 열망이 있다.</p>
<p>무위-고립형 니트를 돕기 위한 은둔고수 활동을 진행 중이기도 하다.</p>
<h1><strong>3부 이상한 나라의, 이상할 것 없는 니트</strong></h1>
<h2>1장 노오력의 종착역은 비노동-비활성화</h2>
<p>160p</p>
<blockquote><p>니트 문제의 핵심은 '일하지 않는 개인'이 아니라 '이 시대의 노동이 처한 환경'이다. 다시 말해 일터에 진입하지 못한 사람들뿐 아니라 일터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p></blockquote>
<p>EBS 다큐에서 느낀 것이 노동이 처한 환경이 열악해서 회사에 다닌 사람들도 니트로 되돌아가는 것 같다. 취업을 시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이 처한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든다.</p>
<p></p>
<p>162p</p>
<blockquote><p>이는 한국 사회 내 니트화의 원인을 교육 훈련 부족이나 능력 차이가 아니라, 장기적 경기 침체 상황에 의한 청년 유휴 노동력의 적체, 즉 사회적 요인에서 찾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김종욱,2017)</p></blockquote>
<p>나도 취업을 하고 싶기는 한데, 경제 침체 때문에 뽑히기가 어려워서 현재 니트족으로 있는 것 같다. 니트화의 원인을 사회에서 찾아야된다는 것에 공감한다.</p>
<p></p>
<p>176p</p>
<blockquote><p>유자살롱을 통해 내가 만났던 청소년과 청년들 역시 애초부터 열정이 없었다기보다 부모와 학교, 일터, 사회가 요구하는 폭력적 규제와 자발적 성취라는 모순적 압박으로 인해 소진된 경우가 많았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학교나 일자리를 그만두었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내적으로 소진되었는지 아닌지 여부일 수 있다. 즉 학교를 다니거나 일을 하고 있어도 지나치게 소진된 상태라면 니트보다 나을 게 없다는 얘기다.</p></blockquote>
<p>내가 니트 상태가 처음 되었던 것도 학교에서 열심히 했는데, 취업을 위해서 더 무언가를 쌓아야한다고?하고 지쳤었던 게 원인이었던 것 같다. 한국 사회가 매순간 열심히 달리라고 요구하는 것이 폭력적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니트라는 기간은 쉴 수 있는 기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는 것 같다.</p>
<p></p>
<h2>2장 계급이자 상태로서의 니트</h2>
<p>181p</p>
<blockquote><p>니트를 개인 심리에서 접근하는 사람들은 종종 무기력을 니트화의 원인으로 상정하는 오류를 범한다. 하지만 무기력은 니트화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다. 무기력은 우울증에 따라오는 증상일 때가 많다. (중략) 이런 우울감과 무기력이 사회적 기반의 부재와 불안감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한편, 개인 내부에서 작동하는 기제를 사회・심리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p></blockquote>
<p>무기력이 결과라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다양한 사람을 이해해주지 않는 사회적 기반에서 나는 우울증에 걸리고, 무기력에 빠진 것 같다. 좀 더 포용력이 있는 사회가 된다면 니트족이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p>
<p></p>
<p>201p</p>
<blockquote><p>이번 인터뷰를 통해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니트가 되지 않은 이유는 개인의 성향과 노력보다 '운'과 '자원', 즉 외부적 요인이 더 컸기 때문이다. 운은 인간이 제어할 수 없지만 자원은 사회가 동원할 수 있다. 따라서 니트 상태의 개인을 지원한다는 것은, 그의 성품이나 지향성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가 니트 상태를 빠져나올 수 있도록 적절한 자원을 제공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p></blockquote>
<p>일을 하는 것을 딱히 좋아하지는 않는다. 이런 성향을 쉽게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일을 해야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은 알기 때문에 일은 하려고 한다. 그리고 일 중에서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이라면 기꺼이 하고 싶다. 그렇지만 이런 일들은 적정한 급여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막상 일을 하려고 할 때 고민이 된다. 사회에서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에 대해서는 보조금을 지급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p>
<h1>4부 존재의 의미와 일 개념의 재구성</h1>
<h2>1장 사회적 존재감의 사회 자본화</h2>
<p>215p</p>
<blockquote><p>그리고 특히 고립-무위형 니트 상태에 오랫동안 머물렀던 청년을 지원할 때는, 초반에는 많은 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입해야 한다. 최대 정지 마찰력 이상의 힘이 작용하기 전까지 물체가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오랜 무중력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매우 집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p></blockquote>
<p>고립-무위형 니트에 대해서 지원이 약한 게 아쉽다. 서울시에서 은둔형 외톨이 지원 예산을 6,000만원으로 잡았다는 것을 보고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무중력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고 본다.</p>
<h2>2장 노동 개념의 호가장과 전환 사업</h2>
<p>245p</p>
<blockquote><p>그 결단과 의지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거대한 전환은 사회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광의의 노동 또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일이다. 경제적 가치가 적은 일이더라도 말이다.</p></blockquote>
<p>내가 하려는 은둔형 외톨이를 도와주려는 일은 경제적으로는 가치가 적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자리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일들에 대해서 직업적 안정을 보장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p>
<p></p>
<h2>대담</h2>
<p>263p</p>
<blockquote><p>최태섭: 아까 계급에 따른 가족 내 상황의 차이를 얘기한 것처럼, 똑같이 니트 상태여도 계급에 따라 양상이 다르다. 그래서 지원 정책에서도 각기 다른 구분 전략을 세우지 않으면 '알 거 아는 애들, 집 좀 사는 애들이 모여서 자기네들끼리 잔치 벌이는 형식'으로 끝날 수 밖에 없다.</p></blockquote>
<p>경제적 위치에 따라서 니트의 유형도 다르게 나타난다는 데 공감했다. 아무래도 집이 넉넉할 수록 은둔형 외톨이 위치의 니트가 나타날 확률이 높은 것 같다. 그때의 지원은 경제적 지원만으로는 부족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각 계급에 맞는 적절한 지원이 필요한 것 같다.</p>
<p></p>
<h2>에필로그</h2>
<p>267p</p>
<blockquote><p>답을 내기 힘들만큼 빠르고 거대한 시대의 전환 앞에 우리는 많은 질문들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 중 하나는 이것입니다. "고용이 당연하지 않게 될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어떻게 존재하고 생각하고 활동할 것인가?" 니트라는 상태를 통해 우린 그 질문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p></blockquote>
<p>같이 이야기 나눠보 수 있는 주제인 것 같다. 그리고 직업이란 게 존재의 의미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p>
<h2>책머리에</h2>
<p>6p</p>
<blockquote><p>이미 10여 년 전부터 청년 니트의 수는 청년 실업 인구를 넘어섰습니다. 통계를 집계하는 기준에 따라 다르지만 청년 니트 인구는 대략 100만 명에서 160만 명 사이로 추정되며, 이는 15세~29세 청년의 9퍼센트에서 18퍼센트 정도를 차지합니다. 다시 말해 니트 상태는 이미 청년들의 삶과 바로 붙어 있습니다. 그저 사회가 직시하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p></blockquote>
<p>청년 니트족이 많은 것은 알았지만, 청년 실업자수보다 많은 것은 몰랐다.</p>
<p>이렇게 심각한 사안인데 니트족을 위한 지원체계는 잘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안타깝다</p>
<h2><strong>프롤로그</strong></h2>
<p>14p</p>
<blockquote><p>어른들은 이들을 무기력하다고 했지만, 나는 이들이 어딘가에 안착하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는 이유가 사회의 중력이 약해졌기 때문이라는 생각으로 '무중력'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p></blockquote>
<p>니트 상태를 잘 표현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p>
<p>사회가 청년들을 잘 뒷받침했으면, 니트족으로 직업과 교육을 받지 않고 살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p>
<p></p>
<h1><strong>1부 니트는, 없다?</strong></h1>
<h2><strong>1장 니트를 둘러싼 몇 가지 해석</strong></h2>
<p>36p</p>
<blockquote><p>현재 니트로 구분되는 상태도 니트성 정도에 따라 세 가지로 세분화할 수 있다. 첫째 '구직 단념 니트' 상태가 있다. 현재는 노동시장에 떨어져 나와 있지만 고용 환경이 개선되면 실업자나 취업자로 이동할 수 있는 상황을 말한다. 둘째 '비활동 니트' 상태가 있다. 활동에 대한 의지도 낮고 실제 활동성도 낮지만 재활성화가 불가능하지 않은 경우다. 셋째 '고립-무위 니트' 상태가 있다. 비활동 단계에서 관계 단절이 더해진 상태로 일본의 히키코모리와 비슷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것이 깊이에 따른 레벨 분류는 아니다. 그보다는 교집합을 갖고 있는 평면상의 서로 다른 영역이라 보면 좋을 것이다.</p></blockquote>
<p>책에 있는 분류에서는 시원한형님께서 말하시는 활동형 니트가 포함되지 않아서 아쉬웠다.</p>
<p>나는 '고립-무위형 니트' 상태였다가 비활동 니트로 갔다가 구직 단념 니트로 현재 존재하는 것 같다.</p>
<p>현재 취업하려면 스펙을 많이 요구해서 니트 상태로 있는데, 고용환경이 스펙 위주가 아니게 된다면 실업자나 취업자로 빠지고 싶기 때문이다.</p>
<p></p>
<p>50p</p>
<blockquote><p>집 밖에서 유유자적 프로젝트를 기획하던 시점에 나는 니트-히키코모리 상태에 있는 청소년을 '무중력 청소년'이라 이름 지었다. 히키코모리를 그대로 번역한 '은둔형 외톨이'라는 말을 그대로 쓰기 싫었기 때문이다. 비자발적인 고립 상태가 마치 자신의 의지에 의한 것이라는 느낌을 주는 은둔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도 싫었고, 외로운 사람에게 외톨이라고 명명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도 했다. 또 니트나 히키코모리라는 좁고 명확한 정의보다 좀 더 포괄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여지를 두고 싶었다. 그래서 한참 고민하가, 사람들이 이들을 '무기력한 상태로 둥둥 떠다닌다'고 손가락질한다는 사실에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무기력이라는 단어에서 한 글자를 바꾸어 무중력이라고 불러 보면 어떨까.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계속해서 영감이 솟아나왔다. 무기력이라 말할 때는 개인의 성품이나 의지에 결함이 있다는 느낌을 주지만 무중력이라는 단어를 쓰면 사회에 결함이 있다는 뉘앙스를 담아낼 수 있었다.</p></blockquote>
<p>니트-히키코모리 상태가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고, 은둔형 외톨이보다 긍정적인 용어인 것 같아서 무중력 청소년이라는 말이 마음에 든다. 빠띠 커뮤니티 실험실 1탄엣서는 물고기를 물살이로 용어를 개선하는 캠페인을 했었는데, 우리도 그것처럼 부정적 이미지의 용어를 변경하는 캠페인을 진행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p>
<p></p>
<h2>2장 이행하지 못하는 사회, 이행하지 못하는 개인</h2>
<p>61p</p>
<blockquote><p>가까운 미래에 무업사회 또는 최소한 노동 기회조차 현저히 축소되는 사회가 도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볼 때, 오랫동안 '퇴행한 낙오자'로 취급받아 온 비노동상태의 개인들, 즉 니트는 이러한 문명의 전환 과정을 조금 더 앞서 경험했을 뿐일지도 모른다. (중략) 무중력 청년이 아니라 무중력 시대를 걱정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구직 단념 니트가 아니라 노동 없는 사회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놓여 있다</p></blockquote>
<p>요새 AI의 등장과 시스템 자동화로 인해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p>
<p>노동하는 사람들보다 노동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사회가 곧 도래할지도 모른다.</p>
<p>그만큼 사회에서는 니트를 문제시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 사회를 어떻게 바꿔나가야하는지 고민해야하지 않을까 싶다</p>
<p></p>
<p>79p</p>
<blockquote><p>'준비생 계급'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한국의 독특한 선발 시스템도 니트와 청년 일반을 구분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중략) 유예하고 준비 중인 상태가 워낙 일반적이기 때문에 니트 개념이 모호해지고, 그렇다 보니 스스로 니트라고 인정하는 사람이 적다.</p></blockquote>
<p>취업준비생이라는 상태도 니트인지, 실업자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p>
<p>나도 요새 컴퓨터활용능력 시험을 준비하고 있고, 대외활동을 통해 자기소개서나 이력서에 쓸만한 내용을 채우려고 하고 있다.</p>
<p>그렇다면 나는 실업자인가? 니트인가?</p>
<p>현재 나는 내 상태를 니트라고 보고 있지만, 니트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꽤 있을 것 같다.</p>
<p></p>
<h1>2부 그들의 사정</h1>
<h2>1장 이 사회는, 내겐 맞지 않는 옷 - 미카</h2>
<p>101p</p>
<blockquote><p>결국 미카가 개인적으로 남들보다 우월하거나 엄청난 노력을 해서가 아니라, 그에게 주어진 자원이 그를 꿈꾸는 프리터 이상으로 끌어올렸다고 할 수 있다. 미카 역시 유자살롱이나 기억발전소처럼 자신을 발현시켜 줄 수 있는 사회적 토양을 만나지 못했다면 자신만의 선인장 속에서 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p></blockquote>
<p>대안적인 가치를 제시하는 사회적 기업이나 단체가 많아져야 한다고 느꼈다.</p>
<p>대안학교처럼 일반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p>
<p>나는 니트컴퍼니 덕분에 그동안 사회적으로 많이 단절되어있었는데, 사람들과의 연결고리가 많이 생겼던 것 같다.</p>
<p></p>
<h2>2장 혼자라는 건 지울 수 없는 낙인 같아 - 루나</h2>
<p>117p</p>
<blockquote><p>초등학교 때 왕따는 중학교 가도 왕따가 되지 않나요? 저는 그게, 자기 자아상이 '왕따'로 형성이 돼서 그렇다고 생각하거든요. 환경이 바뀌어도, 스스로 왕따라고 생각하는 친구는 누가 괴롭히지 않아도 왕따처럼 행동을 할 거니까요. (중략) 저는 니트 상태로 있었던 게, 일종의 자기 학대 같거든요. 그러니까 무엇을 하고자 하는 욕구를 거세당한 느낌이기도 하고, 그리고 그런 경험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숨길 수 밖에 없으니까 더 죄인처럼 느껴지기도 해요.</p></blockquote>
<p>나는 대인관계를 잘 형성하지 못한 편이었는데, 위의 말을 들으니, 그것이 '나는 사람하고 잘 못 어울리는 성격이야'하고 단정지어서 그랬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니트족도 어쩌면 '나는 직장에 잘 다니지 못하는 성격이야'하고 단정짓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p>
<p>그동안 니트족으로 있으면서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껏 했냐고 했을 때 그렇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일단 돈이 부족해서 원하는 활동을 할 수 없기도 했다. 귀중한 시간을 날린 것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은 이것저것 하면서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려고 노력한다.</p>
<h2>3장 즐거운 네트워커의 우울 - 윤자</h2>
<p>132p</p>
<blockquote><p>이런 맥락에서 니트 청년들로서는 부모와의 악순환을 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일본에서 대부분의 니트-히키코모리의 지원 조직들이 당사자들을 가정에서 끄집어내 공동생활을 하게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부모가 한 해 수천만원에 달하는 합숙 비용을 지불한 만큼 사회적인 공감대와 방법론이 어느 정도 자리 잡았지만, 전문 지원 기관이 없는 한국에서는 니트 청년이 심리적, 경제적으로 부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부모와의 잘못된 관계를 끊어야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데, 세상으로 나아가지 못해서 끊을 수가 없다. 영원한 악순환의 고리 속에 놓여 있는 것이다.</p></blockquote>
<p>히키코모리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는 공동생활이 추천되고 있는 것은 알았는데, 니트족에게도 공동생활이 추천되고 있는 것은 처음 알았다.</p>
<p>니트족으로 살고 있기는 하지만, 부모의 울타리 안에서는 스트레스도 계속 받기는 하는 것 같다.</p>
<p>같은 니트족끼리 살면은 같이 프로젝트도 진행해보고 좀 더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p>
<p>청년재단에서 히키코모리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공동생활 지원해주는데, 니트족 상태에 있는 사람들도 정부나 지자체, 재단 등에서 지원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p>
<p></p>
<h2>4장 문화사회의 끝을 잡고 - 로빈</h2>
<p>145p</p>
<blockquote><p>로빈의 이야기를 구조적으로 분석해보면 '돈', '자격', '인정'이라는 단어가 반복해서 나온다. 스스로의 가치에 대해 인정을 받고 싶은데 그러려면 자격을 획듣해야 하고, 거기에는 돈이 들어가는데 확신이 서지 않으니 돈을 투자하기도 힘들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작은 일이라도 일단 시작해야 하는데 받는 돈이 적으면 '내가 그것보다는 자격을 갖춘 사람인데 인정을 못 받는다'는 느낌이 드니까 아무것도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 되는 것이다. 이는 내가 지켜본 많은 고학력 니트들이 가지는 공통점이다. 과거의 객관적 성취가 현재의 주관적 성취감을 방해하고, 결국 미래를 향해 걸어가지 못하게 만든다.</p></blockquote>
<p>나는 대학교만 나왔지만, 대학교를 나왔는데 그래도 어느정도 임금을 받는 직업에 가야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눈을 낮추면 바로 취업할 수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싫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고학력 니트 특징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취업을 위해서 대학원을 갈 생각도 있지만,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대학원을 갈까 말까 아직 말성이고 있다.</p>
<p></p>
<h2>5장 신뢰 자본이 형성되는 지점</h2>
<p>152p</p>
<blockquote><p>결국 비노동・비활성화 상태의 개인을 사회로 복귀시키는 것은 작은 커뮤니티의 중력이다. 니트 상태의 개인들이 상황을 타개해 나갈 수 있는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가장 공통적인 요소는 그를 포용하는 커뮤니티의 존재 유무다.</p></blockquote>
<p>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쭉 니트상태로 살아왔는데, 니트컴퍼니라는 작은 커뮤니티의 존재가 없었다면 니트상태에서 나아가 직업을 구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 같다.</p>
<p>그 커뮤니티 안에서 나는 비난받지 않고 온전히 포용됐기 때문에 니트족으로 살아왔을 때 받아온 상처가 많이 치유되었다.</p>
<p>나도 니트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사회에 나가도록 돕고 싶다는 열망이 있다.</p>
<p>무위-고립형 니트를 돕기 위한 은둔고수 활동을 진행 중이기도 하다.</p>
<h1><strong>3부 이상한 나라의, 이상할 것 없는 니트</strong></h1>
<h2>1장 노오력의 종착역은 비노동-비활성화</h2>
<p>160p</p>
<blockquote><p>니트 문제의 핵심은 '일하지 않는 개인'이 아니라 '이 시대의 노동이 처한 환경'이다. 다시 말해 일터에 진입하지 못한 사람들뿐 아니라 일터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p></blockquote>
<p>EBS 다큐에서 느낀 것이 노동이 처한 환경이 열악해서 회사에 다닌 사람들도 니트로 되돌아가는 것 같다. 취업을 시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이 처한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든다.</p>
<p></p>
<p>162p</p>
<blockquote><p>이는 한국 사회 내 니트화의 원인을 교육 훈련 부족이나 능력 차이가 아니라, 장기적 경기 침체 상황에 의한 청년 유휴 노동력의 적체, 즉 사회적 요인에서 찾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김종욱,2017)</p></blockquote>
<p>나도 취업을 하고 싶기는 한데, 경제 침체 때문에 뽑히기가 어려워서 현재 니트족으로 있는 것 같다. 니트화의 원인을 사회에서 찾아야된다는 것에 공감한다.</p>
<p></p>
<p>176p</p>
<blockquote><p>유자살롱을 통해 내가 만났던 청소년과 청년들 역시 애초부터 열정이 없었다기보다 부모와 학교, 일터, 사회가 요구하는 폭력적 규제와 자발적 성취라는 모순적 압박으로 인해 소진된 경우가 많았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학교나 일자리를 그만두었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내적으로 소진되었는지 아닌지 여부일 수 있다. 즉 학교를 다니거나 일을 하고 있어도 지나치게 소진된 상태라면 니트보다 나을 게 없다는 얘기다.</p></blockquote>
<p>내가 니트 상태가 처음 되었던 것도 학교에서 열심히 했는데, 취업을 위해서 더 무언가를 쌓아야한다고?하고 지쳤었던 게 원인이었던 것 같다. 한국 사회가 매순간 열심히 달리라고 요구하는 것이 폭력적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니트라는 기간은 쉴 수 있는 기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는 것 같다.</p>
<p></p>
<h2>2장 계급이자 상태로서의 니트</h2>
<p>181p</p>
<blockquote><p>니트를 개인 심리에서 접근하는 사람들은 종종 무기력을 니트화의 원인으로 상정하는 오류를 범한다. 하지만 무기력은 니트화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다. 무기력은 우울증에 따라오는 증상일 때가 많다. (중략) 이런 우울감과 무기력이 사회적 기반의 부재와 불안감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한편, 개인 내부에서 작동하는 기제를 사회・심리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p></blockquote>
<p>무기력이 결과라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다양한 사람을 이해해주지 않는 사회적 기반에서 나는 우울증에 걸리고, 무기력에 빠진 것 같다. 좀 더 포용력이 있는 사회가 된다면 니트족이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p>
<p></p>
<p>201p</p>
<blockquote><p>이번 인터뷰를 통해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니트가 되지 않은 이유는 개인의 성향과 노력보다 '운'과 '자원', 즉 외부적 요인이 더 컸기 때문이다. 운은 인간이 제어할 수 없지만 자원은 사회가 동원할 수 있다. 따라서 니트 상태의 개인을 지원한다는 것은, 그의 성품이나 지향성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가 니트 상태를 빠져나올 수 있도록 적절한 자원을 제공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p></blockquote>
<p>일을 하는 것을 딱히 좋아하지는 않는다. 이런 성향을 쉽게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일을 해야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은 알기 때문에 일은 하려고 한다. 그리고 일 중에서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이라면 기꺼이 하고 싶다. 그렇지만 이런 일들은 적정한 급여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막상 일을 하려고 할 때 고민이 된다. 사회에서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에 대해서는 보조금을 지급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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